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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3

by mulyeot 2019. 5. 3.








prologue

before double down











하조 최대의 번화가 N지역의 소음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을 몇 개 가로지른곳에 가게가 하나 있다. 낡은 주상복합 지하로 이끄는 계단은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겠지만, Bar Casablanca의 단골이라면 생각보다 넓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져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계단을 내려가 가게의 문을 여니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퍼진다. 낯이 익은 마스터는 '어서오세요' 라고 반겨준다.


"반가워, 마스터. 평소 마시던걸로 부탁해."


문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자 머지않아 버번이 담긴 유리잔을 내어준다. 누른색의 액체를 한모금 목으로 흘려넣는다. 술을 즐기기 위해 이 가게에 온 것은 아니지만, 술을 즐겨야 할 가게에서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는것은 마스터에게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멋이 없다.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는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에 스며들어 때가 올 때까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한다. 먹이라는것은 즉, 항만 후생 기관의 마약 단속부에서 나올 잠입 수사관을 말하는 것이다. 

가게의 문을 연 직후의 손님들은 모두 파악하고있다. 카운터 중앙에 앉은 남자 2명은 단골이지만, 가장 안쪽의 여자는 처음본다. 장소의 특성상, 이 가게를 혼자 방문하는 여자는 많지 않다. 한쪽 손에는 스마트폰을, 한쪽 속에는 칵테일을 든 그녀도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같아보였지만, 지금 바로 '적중'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끝까지 지켜봐야겠군.



*



그녀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것은 내가 이곳에 들어온지 1시간정도 지났을 무렵. 카운터에 있던 남자 두 명이 자리를 떠났을 때 였다. 장애물이 없어져 자연스럽게 아이컨택의 기회가 찾아온다. 말을 걸지 않고 그저 미소지으니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하곤 눈을 돌렸다. 나도 끈질기게 추적하지 않고 손에 든 잔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간격은 점차 짧아져 아이컨택의 시간이 길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대화는 하지 않는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것은 마스터에게 주문 할 때 뿐이다. 

현 시점에서 그녀가 '적중'일 가능성은 6할 이상. 그 수치의 근거는 그녀가 자리를 떠나 화장실에 갈 때의 몸놀림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무술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걸음걸이에도 그 특징이 나타난다. 물론 안전 신화가 무너져가는 이 나라에서 호신술을 배우는 일반인도 적지 않다.

그녀가 잠입 수사관이 아니라면 오늘밤 소비한 시간은 모두 쓸모없어지지만, 그 수고가 아깝지 않을정도로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계속하는것도 나쁘지 않아. 



*



"어라? 벌써 돌아가는건가?"


그 말은 내가 그녀에게 건낸 첫마디였다. 마스터에게 계산을 한 그녀는 약간 놀란듯이 나를 보았다. 가게에 남은 손님이 둘 뿐이었을 때 부터 꽤나 시간이 흘렀다. 설마 이런 타이밍에 말을 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겠지. 하지만 고집스럽게 말을 하지 않았던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그 행동이야말로 나에게 '적중'이라는 확신을 주게 한 원인이었다. 말을 주고받지 않는 넌버벌[각주:1]행동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몇 시간동안 아이컨택을 거듭할수록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초조했다. 인간은 표정으로 거짓말하는 생물이지만 본능에 새겨진 행동을 억제하는것은 어렵다. 그러니 그녀는 무관심을 연기하면서도 내가 말을 걸지 않았던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꼈던것은 알고있었다. 그녀의 미묘한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틀림없이 불편한 감정을 탈피하기 위해 다른 행동을 할 것이다. 먼저 말을 건다던가, 좀 더 일찍 가게를 나갈수도 있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것 자체가 잠입수사관임을 시인한 셈이다.

쓸모없는 접촉으로 타겟에게 의심사지 않도록 주의하는것은 기본중에 기본이지만 타겟을 눈앞에 두고 쉽게 떠날 수도 없다. 그 결과, 그녀가 처음부터 정해두었던 타임 리미트까지 현상을 유지하는데 애썼다는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녀의 행동은 완벽했지만, 이론상의 완벽함은 부자연스러움을 낳을 수 있다. 거짓말을 간파하는것에 익숙한 나의 눈에 그 부자연스러움은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유능함으로 인해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실례. 누구 기다리는것 같아서 말이야."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펴진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사람을 기다리고있었던것은 맞지만, 언제가 될 지 몰라 오늘은 포기한것이라고.


"그런가. 하지만..."


나는 잔을 손에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 가볍게 체중을 실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을 막듯이. 


"밤은 이제 막 시작됐어. 네가 기다리고 있던 시간은 네가 다음 칵테일을 다 마셨을 때 올지도 몰라. 그 전까지의 시간을 나에게 주지 않을래?"


응답 전까지의 침묵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에 앉는다. 


"마스터, 그녀에게 화이트 레이디를 부탁해. 그리고 이건 내가 받지."


주문하면서 카운터에 올려두었던 그녀의 계산서에 손을 뻗었다. 


"너와 이야기 하는 시간의 대가로는 너무 부족하잖아?"


아마 지금만큼은 순수하게 당황했을 그녀에게서 계산서를 멀리 떨어트린다. 포기한것인가, 작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짧은 유리잔에 담긴 화이트 레이디를 다 마실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말해주었다. 이 근처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있고, 기다리던 사람은 상사라고. 그 상사와 그녀가 연인관계라는것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애초에 그녀가 나에게 말해준 것은 나와 접촉하였을때를 대비한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이곳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여자의 그림자가 보이니까. 아마도 그런 이야기일것이다. 손때묻은 허술한 연극이지만 나쁜 방법은 아니다. 이성에게 연애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되는것은 실제로도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그녀가 쓴 시나리오를 모른척 하며 연기할 뿐이다. 다음은 연애 게임의 말을 조금 움직여보면 된다. 나의 옆에서 날개를 쉬이는 어리석은 나비는 아직 자신이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려있다는것을 모르는것 같으니.



*



Bar Casablanca에서 몇번 더 만났을 무렵, 그녀는 이전에 말했던 상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니 오늘은 평소보다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빠른거겠지. 실연의 상심을 표출하기엔 좋은 연출이다. 


"....그런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앉은 나는 비어있는 잔의 녹은 얼음을 흔들고있다. 마치 상심한 그녀에게 할 말을 찾고있다는듯이 흔들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른것을 생각하고있었다.

이 교섭에서 초조함은 금물이다. 하지만 최상급 와인도 숙성시키는 시간을 실수하면 삼류 이하로 추락한다. 그러니 이제 슬슬 적당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왜그래?"


작은 무게감을 느끼고 생각을 잠시 멈추니 그녀는 나의 왼쪽 어깨에 기대어있었다. 한마디, '조금 취했어.' 라고 말하며. 그것은 그녀가 보내는 명확한 사인이었다. 그녀 또한 다음 행동에 나설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듯 하다.


"나갈까."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키가 높은 의자에서 내려올 때 그녀가 약간 비틀거린것은 연기가 아니었던것 같다. 선천적으로 술에 강한 타입은 아니다. 그녀가 골랐던 칵테일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또 올게, 마스터."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안아 가게를 나온다. 발소리를 내며 콘크리트로 된 무기질 계단을 오르니 지상까지 몇 계단 안남았을 때 그녀가 나에게 안겨온다. '집에 가고싶지 않아' 라고 사라질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문득 미소가 떠오른다. 


"꽤나 이상한 소리를 하네."


그녀에게 의미를 짐작할 유예시간은 주지 않는다. 얇은 허리를 끌어당겨 입술을 빼앗는다. 반사적으로 닫으려는 부드러운 틈새 사이로 혀를 파고들어 도망가는 그녀의 혀를 찾아 쫓는다. 뿌옇게 흘러나와 유영하는 숨결도 이내 가쁘게 달아오른다. 상악부터 혀 아래까지 남김없이 맛을 보니 그녀의 뺨은 은은하게 상기했다. 나는 몸을 구부려 붉게 물든 귀에 입술을 마주한다.


"돌려보낼 생각 없어. 네가 기다리는사람이 없어졌으니, 이제 사양할 필요 없잖아."


팔 안에서 그녀가 움찔거린다. 키스로 농락당한 몸은 숨결이 닿는 미약한 자극마저 반응하는걸까. 


"아니야?"


확인하듯 낮게 속삭였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가로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이상의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



그날 밤, 나는 그녀를 안았다. 달콤하게, 강하게, 정열적으로. 여자를 꼬시는것도, 타국의 첩보원을 교묘한 말로 등돌리게 하는것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상대의 품에 파고들어 호의를 갖게하고 신뢰하게 만든다. 그 수단으로서 성관계는 실로 수완이 좋다. 원시적인 쾌락에 지배되는동안 인간의 마음은 무방비가 된다.

그러니 나의 품 안에서 정상까지 올라간 그녀가 몇번이고 절정을 맞이하며 침대에 늘어지면 곧바로 다시 찔러올라 쾌락의 늪으로 돌려보낸다. 거짓 투성이의 달콤한 속삭임을 쏟아내며 끊임없이 그녀를 원하는 부름에 그녀의 마음 속 깊이 거미의 독을 새겨넣는다. '나는 너에게 푹 빠져있다'고. 

선입견이라고 불리우는 그 독은 서서히 그녀를 좀먹어가겠지. 알아차린 순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독에 젖어 사지가 거미줄로 속박된 불쌍한 나비에게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니까.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해볼까. 마약 단속관."


심히 지쳐 깊은 잠에 빠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쓰다가 오밤중에 소리지를뻔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내용 존잼인데 왜 본편에서는 뚝잘라먹고 연인부터 시작인거죠 ㅠㅠ 드씨로 구현하기 힘들긴 하겠다만...ㅋㅋㅋㅋ 


술집에서 몇시간동안 눈만 마주친다는거에 내가 다 숨막힘;;;;;;; 저길 어떻게 앉아있음??? 3분도 못버틸거 같은데... 아니 그전에 잘생긴 젊은총각이 저래 계속 쳐다보면 내장털리는기분들어서 가만히 앉아있을수나 있나...? 어우야 못할짓이여;;;;;;;;;;;;;;






















  1. Non-verbal Communication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