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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사이카와 부부의 위기
진심으로 했던 부부싸움은 단 한 번.
자료실에서 야근한 후, 다음 주. 여관 체인의 예산 교체 문제는 무사히 수습되었다. 목요일(날이 바뀌어 금요일)에 제출한 자료에 현재 신문광고가 얼마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지, 예산을 전부 웹으로 돌릴 경우 얼마나 많은 고객이 떨어지는지 시뮬레이션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여, 상대쪽 임원으로부터 전부 웹에 사용할 수는 없겠다는 답변을 쉽게 받아왔다. 그리고 확신을 위하여 사이카와 군이 준비한 사장이 입사 당시에 현장에서 처음으로 종사하던 신문광고를 자료에 넣은 것도 공을 세웠다. 창구의 담당자 말로는 그 광고를 본 사장이 그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때의 고객도 소중히 해야 하겠지’라고 말했다나. 이제 당분간 여관체인이 예산을 전부 웹으로 바꾸는 일은 없겠지. 결과적으로 여관 체인을 위해 좋은 광고 틀을 준비했던 신문사 담당자에게 큰 손해를 주지 않고 끝났다. 우리 회사의 웹 광고 담당자만이 ‘모처럼 대규모 매출을 만들 수 있었을지 몰랐는데’라며 한탄했지만, 그것도 전주 부회에서 사이카와 군이 웹 광고의 사례 발표를 한 것으로 부원이 활발하게 고객에게 제안하는 것 같고, 말은 그렇게 해도 사이카와 군에게 감사하고 있다.
일단락. 한동안은 막차 시간을 넘어가는 야근도 없을 테니, 이번 주는 빨리 돌아가서 쌓인 집안일을 해야겠다. 좋아. 주먹을 꽉 쥐고 책상 위를 본다. 쌓인 서류는 처리가 쉬운 간단한 것들 뿐. 시계를 흘깃 본다. 지금 시각 오후 3시 반. 좋아. 6시에는 퇴근하자. 그리고 오늘은 슈퍼에 들러 사이카와 군이 좋아하는 걸 만들자. 속으로 그렇게 정하고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려 옆자리로 고개를 돌린다.
“사이카와 구...”
부르려다 말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보인 건 사이카와 군의 등과 의자의 등받이였다. 그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 방금 한 말 취소. 일단락. 일단계를 넘어 한 단계가 더 있다. 사이카와 군과 이야기 하는 사람은 어리고 귀여운 신입사원 여자아이.
“.....술? 나랑?”
“네.”
“둘이서?”
“둘이서 부탁드립니다!”
의외로 노나미 씨는 힘차게 말했다. 하늘거리는 보브헤어와 선한 인상과는 다르다. 안되지, 안돼 안돼. 사이카와 군 이런 갭 싫어하지 않는단 말이야....! 시끄러운 머릿속을 억누르고 시선을 떼어 서류로 돌려놓는다. 생각하지 말자. 염불 대신 서류작업 공정을 외며... 하지만 귀가 대화를 끌어온다.
“알겠어. 그럼 7시쯤 나갈까.”
….알겠다니….! 더이상 일 못 하겠다. 6시까지 일을 마무리하려던 조금 전의 각오는 급속도로 떨어져 간다. 노나미 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알겠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로 돌아갔다. 이내 의자를 돌리는 소리가 나고, 사이카와 군이 이쪽을 보는 느낌이 든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올린다.
“….그렇게 됐어, 하나무라 씨.”
“….네?”
“옆에서 들렸겠지만, 오늘 저녁에 노나미 씨와 일찍 나갈 거야.”
….그건 저녁 차릴 필요 없다는 말? 뭐야, 그게. 가정용 연락은 라인으로 해주면 될 것을.
“하아, 그런가요. ….그거 저랑 무슨 상관있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하나무라 씨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된다고. ….뭐 화나는 일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한다. 그게 화나서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아니요, 전혀요. 편히 노세요.”
“….”
사이카와 군은 아무 말없이 납득하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오늘은 혼자서 사치좀 부려야지. 집 근처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내 몫만 사 갈거야…..! 그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시 나의 일로 돌아온다.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사이카와 군은 나의 책상에 처리해야 할 서류를 건네준다. 아, 일이 늘었어!! 그와 동시에 옆에서 귓속말한다. 1
“사실 그때 깨어 있었지?”
그 말을 듣고 옆을 보니 사이카와 군은 그새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업무에 관한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또 짜증이 난다. 자기 할 말만 하고.
“...”
예에, 그렇습니다. 깨어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펼쳐놓은 서류 위에 ‘사이카와’ 인감을 하나씩 찍으며 기억을 되살린다. 그날 자료실에서 있었던 답답한 사건을.
자료실에서 사이카와 군이 바짝 다가왔을 때.
“...정말로 해버릴까? 여기서.”
“이제 그만 동기 이상의 관계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키스보다 더.”
그렇게 말하며 몸을 기대고, 허벅지를 만져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한 ‘동기 이상의 관계’라는 것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해버리자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설마 사이카와 군이 회사에서 그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나는 좁은 책장 틈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본다. 다시 몸이 밀착된다. 이번엔 서로 마주 보며. 딱 달라붙어 신장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다.
“....동기 이상으로 허락해 줄 건가요?”
그의 눈이 약간 커졌다. 사이카와 군은 내가 회사에서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 술자리에서 했던 키스는 백번 양보해서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사이카와 군은 내 생각을 알고 있을 것이다.
뒤꿈치를 약간 들고 키스를 한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싸 안으니 사이카와 군의 손은 약간 망설이다 나의 허리를 안는다. 계속 위를 보고 있자니 목이 아프다. 작은 입술의 틈새를 혀로 파고든다. 그는 다시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고 내가 그의 혀를 살짝 핥으니 그의 어깨가 책장에 부딪혔다.
“....괜찮아?”
소리가 엄청 아파 보이는데. 걱정이 되어 입술을 떼어놓고 묻는다. 그는 작게 괜찮다는 대답을 하고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떠올랐다. ....이상하다. 왜 그런가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먼저 키스를 하는 건 엄청나게 오랜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때에도 날카로운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친다. 차가운 눈동자 속에 담긴 온기. 계속 보고 있으면 이성이 끊어질 것 같아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린다. 그러자 립스틱이 묻은 입술이 눈에 들어와 약간 민망해진다.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좁았지만 나는 그를 감싸던 한쪽 팔을 풀어 검지로 그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닦았다.
“립스틱 묻었어?”
“응.”
“...”
내가 그의 입술을 닦는 동안 사이카와 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 지워졌나, 생각하고 손가락을 떼어내니 이번엔 그의 입술이 나를 막았다.
“으음.....”
뜨겁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좋다. 입안을 훑는 그의 키스는 언제인가 아침에 했던 행위를 연상케 했다. 살짝 눈을 떠 보니 그도 살며시 눈을 뜬다. 그의 눈을 보며 그도 그날의 아침이 떠올랐다고 확신한다. 숨결 속에서 그의 욕구가 전해진다. 만약 여기가 집이었다면....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알고 있다. 격렬한 키스 도중 입술을 떨어트린다.
“....미안, 하나무라 씨.”
일 할까. 그는 그의 입술을 닦으며 반대쪽 손으로 나의 머리를 토닥였다. 나는 혼자 남은 책장 사이에서 번진 립스틱을 손가락으로 닦는다. 알고 있다. 사이카와 군은 피임을 하지 않으면 나를 안지 않는다.
“저는 옛날 신문광고를 찾을게요.”
“응. 부탁해.”
방금 일어난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의문을 남긴 채 우리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온다.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져온 사이카와 군은 벽가에 앉아 소매를 걷는다. 완전히 일로 돌아갔다. 테이블을 쓰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어서 허리가 뻐근하다고 아저씨 같은 말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작업을 한다. 나는 자료실에서 쓸만한 자료를 찾아 적당히 골라내고 포스트잇을 붙여 사이카와 군의 옆자리에 놓아둔다. 그는 자료의 수치를 그래프화 하여 설득 자료에 넣는다.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졸음이 밀려왔다. 밤 10시. 평소라면 책상에 앉아 타블렛을 주무르며 졸음을 떨쳐낼 시간.
“....금방 끝나니까 자도 돼.”
“....자도 된다면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안돼. 어차피 택시 타야 하니까 같이 가.”
어깨를 빌려주겠다는 듯 이리 오라고 부른다. 어라? 지금 집에서 쓰는 말투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나의 의식은 서서히 멀어져 간다.
깊게 잠에 빠지지 않고 아마도 몇 분 정도 지났을 무렵. 기대고 있던 사이카와 군의 어깨가 움찔한 순간 나의 의식이 돌아왔다.
“.....뭐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노나미 씨의 목소리. 아, 지금 좀 부끄러운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어나는 것이 꺼려져 자는 척을 한다. 옷이 밀려 올라가진 않았나 하반신이 걱정되었지만 내 옷이 아닌 다른 옷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가 옷을 덮어준 거겠지.
“누가 보고 오라고 했어?”
뺨을 얹은 어깨에서 목소리의 진동이 전해진다. 자는 척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이상한 소문이 있었지.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데. 서러워라.”
“....성실하게?”
성실하게? 속으로 내뱉은 말이 노나미 씨의 목소리와 겹친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해버리자고 장난치던 인간이 무슨....!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호흡을 유지한다. 그러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카와 군은 노나미 씨에게 말한다.
“아아, 귀엽지. 내 아내.”
목소리가 나올 뻔했다. 앞머리에 무언가 닿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내!? 지금 아내라고 했어!?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사람...! 하지만 자는 척에 밀려 아무말도 할 수 없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데요.”
....아. 농담인가.
“노나미 씨는 감이 좋아서 무서워.”
“정말로 처음 인사했을 때부터 장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남 같지 않은 것 같아서...”
“부부는 남이야.”
“.....네?”
으으응...?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나미 씨가 설마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의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정말로 부부 같다는 말을 했던 건 기억하지만, 설마 그때부터 계속 의심중...?
“....응?”
이번에 이상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낸 것은 사이카와 군이었다. 무슨 일이지? 눈을 감고 있으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다.
“....왜 그래, 노나미 씨.”
“.....쓸 데 없는 말 해도 될까요. 사이카와 씨, 저.... 사이카와 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이카와 군의 ‘나의 아내’라는 발언에는 상당히 놀랐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냉정을 유지했다. 서로 독신으로 살고있는 이상, 이렇게 사이카와 군이 고백받는 일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그 현장에 같이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지만.
“....”
호흡 소리가 들린다. 사이카와 군은 뭐라고 대답할까. 나와 결혼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이번에도 하나무라가 어쩌니 하려나. 그건 좀... 싫은데. 그가 입을 열려는 느낌이 든 순간.
“노나미! 무사하냐?”
굵고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코마다 씨의 목소리다. 그 틈을 타 깜짝 놀란 듯이 눈을 뜨며 사이카와 군의 어깨에서 떨어진다.
“...”
그때 사이카와 군의 눈은 ‘자는 척하는 거 다 들켰어’라고 말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며 자료실에 들어온 코마다 씨는 우리 세 명을 내려다보고 수염을 만지며 큰 소리로 말했다.
“노나미가 돌아오질 않아서 두 사람이랑 무슨 일 있나 다들 걱정했었어.”
“이딴 식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지지 않고 큰소리치는 노나미 씨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사이카와 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노나미 씨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한 글자도 놓치지 않는 명랑한 목소리였다. 코마다 씨의 말 때문에 방해받아 내지른 소리는 사이카와 군의 마음속에 닿았겠지. 한 번 더 살며시 사이카와 군의 얼굴을 봤지만 그는 완전히 회사에서의 사람 좋은 얼굴로 바뀌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노나미 씨가 말한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둘이 어깨를 베개 삼아 알콩달콩하게 있었습니다.”
앗! 갑작스런 밀고에 사이카와 군이 변명한다.
“아아, 하나무라의 자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깨울 수가 없었어... 천사가 아닐까?”
“어머, 무슨 말이에요♡ 부끄럽게...”
장난스럽게 받아치며 어물쩍거린다.
‘귀엽지. 내 아내.’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으로 불러준 ‘아내’라는 단어에 동요한다.
“이미 끝내고 늘어져 있던 건가.”
“아하하”
“웃지 마, 사이카와. 부정 좀 해.”
잘 웃네. 나는 그의 겉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주름을 편다. 역시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6시가 넘어 대부분은 일처리는 끝났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책상 위를 물티슈로 닦아낸다. 그리고 사이카와 군에게 말을 건다.
“사이카와 군.”
“응.”
“저 먼저 퇴근하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아, 응, 괜찮아. 편히 쉬어.”
그렇게 말하곤 미소 짓는다. 오늘은 그 얼굴로 노나미 씨와 식사하러 가는 겁니까. 그렇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내일 봐.”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전하고 보드쪽으로 걸어간다. ‘하나무라’ 자석을 ‘귀가’에 붙이고 무심코 노나미 씨를 본다. 그녀는 고객을 상대하는지 전화기를 들고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이젠 완전히 영업자네. 마츠바라 씨 교육의 결실인가?
“...”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허세가 아니라 정말로.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는 정도가 심하다.
결혼한 걸 회사에 공언할 수 없다.
결혼반지도 받지 못했다.
침대도 따로.
말해본 적은 없지만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은 기색.
욕실에는 절대 같이 들어가지 않는다.
....뭐, 마지막 하나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부부의 위기에 가깝지 않을까. 결정적으로 한 장의 종이. 그의 침대 옆 서랍. 잠겨 있던 서랍에서 나온 것. 그 종이를 발견한 것은 올해 3월. 대학교 졸업 시즌.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의 일. 그날 그의 서랍은 웬일인가 열쇠도 없이 활짝 열려있었다. 침실 청소를 하던 나는 끌려 들어가듯 그 서랍을 훔쳐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한 장의 종이.
‘이혼 신고서’였다.
여관체인 어쩌구저쩌구 신문예산 블라블라 = 많이 바쁘구나
아주 훌륭하게 알아처먹었지만 여기에 쓰기엔 여백이 부족하다
- *ダッツ 하겐다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