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ge et Noir 周防衛士 & 柏木セナ
definition of the joker
전속 해커로 고용된 지 약 2년. FBI는 나를 포함한 비공식적 존재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부고발 때문에 불법 수사의 일부가 노출되어 연일 보도가 과열되어있으니까. 즉, 도마뱀의 꼬리를 자른 것이다. 사전 설명 같은 건 있을 리 없고, ‘퇴직금’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이 내 계좌에 입금되어 있었다. 사실상 ‘퇴직금’이라는 이름의 ‘위자료’였다. 여론을 타고 고발하는 영웅 해커가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겠지. FBI 같은 방식이었다. 계속 나를 담당해왔던 밴과도 당연히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단 한 번 이름이 적히지 않은 편지가 온 적이 있다. 거기에는 꼼꼼한 글씨체로 ‘미안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모든 수사관에게 전 해커와 접촉 금지 명령이 내려왔을 텐데, 의리 있는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딱히 밴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와 같이 수사를 도우던 때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솔직히 생계에 대한 걱정은 없다. 이번에 입금된 ‘퇴직금’이나 지금까지 벌어왔던 돈을 생각해본다면 한동안은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그러니 경제적인 면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속은 커다란 초조함에 휩싸여있다.
“....나 또 혼자 남았다.”
익숙한 아파트의 방 안이 괜스레 크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락한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밖에 나가봤자 대신할만한 장소를 찾을 수도 없다. 빗대어 말하자면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 혼자 남겨진 기분. 누구에게도 나의 목소리는 닿지 않고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런 압도적인 소외감과 고독감에 공포까지 느껴진다. 부모가 죽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에 빠졌다. 그런데 그것보다 한참 전, 비슷한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였지?”
베개를 끌어안고 기억을 더듬는다.
“...아아, 그렇지.”
‘그 사람’과 만났을 때에도 나는 같은 어둠 속에 있었다.
*
일본에서 손꼽는 항구도시 하조. 그중에서도 최대 번화가로 알려진 N 지역은 사람과 물건들로 가득 찬 잡다한 분위기가 내가 태어나 자라던 곳의 도심과 비슷하다. 도시의 번잡함을 체감하며 나는 혼자 어두운 골목에 앉아있다.
“어떻게 하지, 이거.”
손으로 굴리며 갖고 놀던 비닐 파우치에 눈을 돌린다. 며칠 동안 이 근처를 배회하다가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쥐여 준 물건이다. ‘이거는 그냥 줄 테니 한번 시험해봐’라며. 마음에 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같이 줬다. 비닐을 흔들어보니 안에 들어있던 분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음을 잘게 부수어 놓은 듯한 모양으로 보아 밀가루나 설탕 같은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아마 정체는 ‘아이스’. 이 나라에서는 각성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써볼까.”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별로 관심 없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어차피 목적도 갈 곳도 없으니까.
“어이, 너 뭘 들고 있는 거냐.”
멍하니 비닐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어느 순간 누군가가 앞에 와서 서 있었다. 그 사람을 올려다보니 우락부락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아저씨는 누구?”
“아저씨 아니야. 나는 아직 30대다.”
“아. 그렇습니까. 뭐 그런 건 알 거 없고, 누구?”
그는 눈썹을 움찔거리고는 슈트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배지를 보여줬다. ‘NARCOTICS AGENT’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아, 일본판 DEA요? 그럼 저 체포되는 건가요? 이거 들고 있는 거 걸렸으니까?”
비닐을 흔들어 보이니 그의─ 스오 씨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너 이게 뭔지 아는 거냐?”
“뭐냐니요. 각성제잖아요.”
“알고 있으면 이걸 왜 갖고있는거냐.”
“몰라요. 저쪽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받았을 뿐이에요.”
“거절하지 않고?”
“준다니까 받았죠.”
“준다고 해서 막 받지 마.”
“어차피 흔한 일이잖아요. 이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각성제 오염이 심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보도되지 않았을 뿐. 제 나이쯤에 손을 대는 사람도 많잖아요. 당신 같은 일을 하면 저보다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터무니없는 어린애군.”
그렇게 결론 내린 스오 씨는 큰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같이 좀 가야겠다.”
“....어디로?”
“사정 청취다.”
*
스오 씨가 말하는 ‘사정 청취’는 번화가 가까이에 주차되어있던 차 안에서 시작되었다.
“이름을 말해.”
“세나. 세나 콜린스.”
“국적은?”
“미국입니다.”
“....설마 불법 체류는 아니겠지?”
“아니에요. 부모 사정으로 친척 집에 맡겨졌을 뿐. 확인해보시면 바로 알 거예요.”
“나이.”
“13살.”
“13살이라니, 중학생이잖아...”
운전석에 앉은 스오 씨는 인상을 한껏 찌그러뜨렸다.
“학교는 어떻게 됐냐.”
“그런 거 며칠 가고 안 갔어요. 전부 어린애들 같아서 못 가겠어요.”
“너도 어린애잖아.”
“같은 취급 하지 말아주세요.”
다시 한숨 소리가 들린다.
“가출한 거냐?”
“가출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원래 제집도 아니었고. ....뭐, 식객이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 안 돌아가는 거냐?”
날카로웠던 스오 씨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별로....”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저, 그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그 이상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스오 씨는 수첩을 닫았다.
*
사정 청취 후 하조 시내의 항만 후생 기관에서 요구한 절차가 끝나고 스오 씨가 호출한 나의 이모가 나를 마중 나왔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입을 열자마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내겠지.
“절차는 끝났으니 오늘은 집에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 하지만 그 전에 잠시 세나 군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정중한 말로 이모에게 말을 하는 스오 씨는 솔직히 위화감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걸 신경 쓰지 않고 시키는 대로 방 밖으로 나갔다.
“너에게 이걸 주고 싶다.”
둘만 남게 되니 스오 씨는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걸로 뭘 하란 말씀이시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상담 정도는 해줄 테니.”
“....어째서?”
스오 씨를 올려다보아도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가족보다 생판 남에게 말하기 더 쉬운 이야기도 있다. 필요한 만큼 내뱉고 버려버려. ...그럼 나는 이만.”
그렇게 말하고 스오 씨는 나를 이모에게 맡겼다. 그때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
반년 후. 나는 하조 시내의 파출소에 왔다. 내 앞에 있는 경관과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학교 결석, 심야 배회, 도둑질, 상해 미수. 무슨 짓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잡혀 올 때마다 그와는 여러 번 얼굴을 마주했다. 그때마다 끌려 나온 이모가 사과를 했지만 오늘은 드디어 출석을 거부했다. 이제 지칠때도 되었지. 오히려 지금까지 나를 데리러 왔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경관이 마중 나올 다른 가족은 없냐고 묻지만,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원래 바쁜 분이었고, 무직에 마약 중독자인 아버지는 논외. 그러니 나를 마중 나올 사람은 없다.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소년원에 갈지도 모른다. 겁을 주려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입을 다물고 있던 나에게 경관이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몸을 기댈만한 어른은 없냐고. 그리고 문득 그 명함이 떠오른다. 반년 전에 받은, 지갑 속에서 잊혀진 존재를.
*
파출소에서 전화를 받은 스오 씨는 1시간 정도 후에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설마 정말로 올 줄 몰라서 상당히 놀랐지만, 차에 타자마자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다.
“야이 멍청한 자식아!”
“아팟....!”
힘을 빼고 때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정수리가 욱신거리며 눈물이 고였다.
“...화나셨습니까?”
“당연하지.”
“바쁘실 텐데 일하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야.”
스오 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나를 보았다. 화가 난 듯한, 난처한 듯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기 전에 전화를 하지 않은 거냐.”
“그야.... 상담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엔 남 일이잖아요.”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스오 씨의 표정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어찌됐건 바래다 줄테니 집에 돌아가라. 아주머니에겐 내가 설명할 테니.”
“싫어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면 지금 여기서 내려주세요.”
“어디를 가려고?”
“적당히 어디 PC방이라도 가서 외박할겁니다.”
“그럼 또 똑같잖아. 이번에야말로 소년원에 간다고.”
“그 집에 가는것보다는 나아요.”
“정말이지 네녀석은....”
그것은 포기한듯한 목소리였다.
“....이모의 집이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이거지?”
“예?”
멋대로 하라며 내던져질 줄 알았다. 나는 스오 씨를 다시 쳐다본다.
“그렇잖아?”
“뭐, 그렇습니다만...”
“알겠다.”
스오 씨는 그렇게 말하고 시동을 걸었다. 차는 이모의 집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저기, 어디를 가는겁니까?”
“닥치고 가만히 있어.”
자동차가 멈출 때까지 스오 씨는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
스오 씨가 간 곳은 하조 시내의 맨션. 비교적 넓어보이지만, 현관부터 방 이곳저곳에 생활감이라고는 없었다.
“자, 이 방 써.”
스오 씨가 방문 하나를 열었다. 가구 하나 없는 허전한 모습이 아무도 쓰지 않던 방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저기, 이 집 혹시....“
"내 집이다.“
"설마 생판 남을 집에 들일 생각이십니까?“
"네 신원을 인수받은 이상 나는 네 생활을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스오 씨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일이 있어서 집에 오는 건 대부분 한밤중이야. 얼굴이라도 보는 날은 아침에 퇴근할 때겠지. 그렇다면 서로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니, 그래도...“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가 나쁜짓을 할거라고는 생각 안하시나요? 그, 무언가를 훔친다던가, 방을 어지럽힌다던가.“
"훔칠만한 물건은 네가 보고 있는 대로 아무것도 없고, 일에 관련한 물건은 집에 놓아두지 않아. 그러니 너한테 들켜서 난처한 건....“
거기에서 말을 자른다. 스오 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나를 내려다본다.
"뭐, 그래봤자 야한 책정도겠지.“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예상을 저만치 벗어난 대답에 맥이 빠진다.
"....갖고 계시는군요. 그런 거. 흥미 없어 보이는데.“
시들시들해보여서 그러는게 아니라, 그저 일에 열중하는 사람 같아서 그런 데에는 의식이 향하지 않는 줄 알았다.
"이 나이 먹고 여자한테 관심 없으면 문제가 클텐데.“
"아니요, 저는 모릅니다.“
"아무튼 찾아다니지 마라. 어린애한테는 아직 일러.“
"....관심 없습니다.“
식객이 뭐가 아쉬워서 남의 낡은 포르노 잡지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거지?
"그럼 나는 이제 다시 일하러 간다. 집에 있는 물건은 마음대로 써도 돼. 필요한 물건 있으면 사다 놓을테니 사양 말고 말해라.“
그 말을 남기고 스오 씨는 집을 나갔다.
"....그렇게 저를 신용해도 되는겁니까?“
사라진 등에 대고 묻는다. 물론 이 집에서 나쁜짓을 하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스오 씨의 행동이 신기했을 뿐.
"이상한 사람...“
혼자남은 방안에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
"음....“
문득 눈을 뜨니 주변은 어둑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 잠든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보니 진작에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어라?“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아무래도 스오 씨가 돌아온 것 같다.
"아, 일어났나.“
거실로 나와보니 예상했던 대로 슈트차림의 스오 씨가 있었다. 방금 돌아온 모양이다.
"딱 좋네. 배고프지? 도시락 있어.“
"아니요, 저는 별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배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네 배는 솔직하네. 그냥 먹어.“
스오 씨가 어깨를 들썩인다. 왠지 조금 억울해진다.
"뭘 먹을지 몰라서 아무거나 사 왔어. 먹고싶은거 골라봐.“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것은 둘이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의 편의점 도시락들.
"이 검은건 뭔가요?“
"김이야. 이게 먹고싶은건가?“
".....아니요, 뭔가 이상해 보여서 포기할래요."
"그럼 이건?“
그가 내민 것은 구운 연어가 썰려있는 도시락이었다.
"생선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건?“
다음으로 내민 것은 '고기 야채 볶음 도시락'이라고 쓰여있었다.
"야채 싫어합니다.“
"거 참...“
스오 씨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완전히 편식쟁이잖아. 그러다 키 안 큰다?“
"....내버려 두세요.“
시선을 휙 돌리니 작은 탄식소리가 들린다.
"먹을 수 있을만한거 뭐 없냐?“
나는 다시 한번 테이블 위의 도시락을 봤다.
"이건 좋아합니다. 달아서요. 그리고 이것도....“
우선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걸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계란말이랑 가라아게인가. .....참나, 말버릇은 고약하면서 몸은 역시 어린애잖아.“
"13살이면 어린애 아니에요.“
"아, 알겠다, 알겠다.“
스오 씨는 적당히 대답하며 접시 대신 도시락 뚜껑에 계란말이와 가라아게를 덜어준다.
"자. 먹어. 젓가락 정도는 쓸 수 있지?“
"....바보취급 하지마세요.“
뚜껑을 받고 나무젓가락을 가른다.
"잘하네.“
"또 어린애 취급하십니까?“
"미안, 미안.“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아 맥주를 꺼낸다.
"....역시 아저씨.“
본인은 아직 30대라고 선을 그었지만 맥주를 마시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관록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전혀 먹지 않는 것도 미안한 기분이 들어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문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건 사실이다. 한번 먹기 시작하니 의외로 잘 들어간다.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한동안 서로 아무 말 없었지만 스오 씨가 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때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연다.
"뭔데.“
"어째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건가요? 가족들도 저를 포기했는데.“
"....그렇군.“
스오 씨는 빈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그 눈은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놀릴 때와는 달리 진지하고 심각했다.
"예전에 너랑 비슷한 말을 했던 녀석이 있었어. '이 집은 내가 있을 곳이 없어'라고.“
"누군가요? 그게.“
"내 동생.“
스오 씨는 슈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맥주캔을 재떨이 대신하여 담뱃재를 털었다. 나를 신경써 주는 것인지 연기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그 녀석은 재혼 상대의 자식이었는데 딱 지금 너랑 비슷한 정도의 나이였다.“
스오 씨는 담배연기를 한가득 뿜어내고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갑자기 새로운 어머니와 형이 생겨서 당황했겠지. 새 가족에 적응하질 못해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처럼 문제를 일으켜서 경찰한테 불려갔던 적도 자주 있었어.“
다시 연기를 내뿜는다. 약간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담배연기는 고리모양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언제인지 처음으로 까놓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 녀석이 그러더군. '내 집인데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은 없는 것 같아.'라고.“
연기로 만든 고리가 점차 옅어지고 이내 사라진다. 왠지 그 모습에 현혹된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말했지. 있을 곳이 없으면 만들라고.“
"자신이 있을 곳을 만들라고요?“
"그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겠지.“
스오 씨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입 끝을 비틀며 담뱃재를 캔에 떨어트린다.
"그 녀석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를 했어. 그러니 너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때까지 제가 여기에 눌어붙어 있으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마음대로 해. 여기 있고 싶으면 계속 살아도 돼.“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저는 집세도 식비도 못 내요.“
"어린애한테 돈 뜯을 만큼 굶주리진 않았어.“
"집안일도 해본 적 없고.“
"가정부로 주워올 생각도 없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학교도...“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공부는 살아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하고싶을 때 해도 돼.“
스오 씨는 마지막으로 깊게 한번 빨아들이고는 짧아진 담배꽁초를 캔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 대신, 약물은 절대 손대지 마라. 약속할 수 있겠나?“
그 말에 왠지 무게감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몰려오는 듯한 느낌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네.“
느껴진 무게감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무엇입니까?“
"밥은 제대로 먹어. 특히 야채.“
"어.....“
"대답.“
"....노력해보겠습니다.“
"좋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니 스오 씨는 환하게 웃었다. 그 뒤로 긴장감도 누그러져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스오 씨는...“
"응?“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네요.“
"시끄러워. 내버려 둬.“
".....하하.“
아마도 나는 이때 처음으로 생판 남 앞에서 웃었다.
*
결국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몇 달 동안 나는 스오 씨와 함께 살았다. 가족도 아니고, 그 집의 공동 계약자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심히 불가사의했다. 나의 손은 자연스럽게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지갑에서 낡은 명함 한 장을 꺼낸다. 스오 에이지. 이렇게 이름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사실은 1년 정도 전에 이 나라에서 그의 소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마약 단속부와 DEA가 이례적으로 합동 수사를 하여 마약 밀매 조직을 괴멸시켰다고. 작전을 짜고 지휘했던 일본인 '에이지 스오'라는 이름은 이 나라의 경찰 관계자 사이에서 화제가 된 듯하다. 그래서 밴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놀랐었다.
"자신이 있을 곳을 만들어라...“
당시에 의미를 모르던 나에게 그는 말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그건 어떤 장소라도 제가 멋대로 정하면 된다는 말이죠?“
확대해석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결단하였다. 이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남아있다면 그곳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화번호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긴장감으로 약간 떨린다. 몇 차례 통화음이 지나가고 스마트폰에서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랜만입니다. ....스오 씨."
뭔가 한번 하니까 금방 끝나는거 같기도....하네...
알렌 하나남았다!